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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단편

어린 날의 상처

by 헬로우와이케이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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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그 당시 많은 나는 조립식? 장난감을 무지하게 좋아했다.

그 당시에 이곳저곳에서 들어온 용돈을

거의 다 아카데미과학 조립식을 사는데 허비를 했다.

허비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조립식에 들어있는 본드때문에 내 머리가 나빠지기 시작한게 아닌가 우수게 소리로 말하곤 한다.

그 때는 참 좋아 했다. 조립식을, 아카데미과학을....

내 인생의 전부인거 처럼 조립식을 사대고 맞추고 부서지면 아쉬워하고 다시 본드 칠을 하면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거금 5천원짜리 제품을 발견하고

광분을 감추지 못했던 어느날이였다.

근데 그날 마침 돈 백원인가 오백원인가가 부족하여 발만 동동 구르던 5일장이 서는 장날이였으니.....

엄격하신 아버지에게 장날때면 바쁜 아버지에게 부족분을 요청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때였다.

이심전심이라고 때마침  아버지께 가여운 눈길을 날려 주었다.

아버지는 바로 눈치를 채시고 바로 허리띠에 부근 아주 작은 포켓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주셨다.

그 동전의 따땃한 느낌.

그리곤 탄성을 내질렀다.
이제 제품은 그 조립식은 제 껍니다.

그 당시 양옥이있던 우리집은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과 작은 중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작은 문은 많은 이들이 머리를 찧던 중문이였다.

너무 좋았던 나머지 그 중문 사이를 펼척 거리며 뛰어 다녔다.

그러다 사단이 벌어졌다.

문지방에 그망 이마를 찌고 말았고,

잠시 TV시청 조정 시간을 맞이하며 눈앞이 캄캄해 졌다.

죽는 거나 싶었다.

얼굴을 감싸니 이미가 찢어졌는지 따뜻하고 느꺼운 액체가 흘러 나온다.

피다, 육감으로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잠시 화면 조정시간이 변하면서  RGB색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오, 보인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눈을 떠 보니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께서 나의 상태를 체크하고 계셨다.

분명하게 소리가 들린다.

아머지친구분이 "꼬매야 겠는데....."

그 분의 말을 듣는 순간 더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그래서 그런 거지, 잠시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아버지 친구분은 바로 도장가게 아저씨 작은 조각도로 작은 도장을 깍아내는 베테랑, 손기술이 좋으신 건 분명했다.

하지만

나에겐 트라우마가 있었으니 그 아저씨의 무자비한 의료시술을 경험한 뒤었던 터다.

바로 둘째형의 발을 마취없이 꼬맨 사실을 나는 생생이 기억하고 둘째형의 다리를 볼때 마다 그 때의 전률이 떠오른다.

나는 그 와중 아픈 머리를 감싸 쥐고 붉고 따땃한 피를 손으로 감추며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아무 이상없어요', 괜찮은 거 같아요'

아버지는 나의 뜻을 아셨는지, 잠시 누워 있으라 말씀 하셨고 다행이 피가 잘 멎는다는 한약재를 이마가득 얹어 주었고,
꼬맺는 거 없이 잘 치료가 되었던 그런 기억.....

그리고 머리털과 이마사이의 상처난 그 부분은 머리카락이 더 나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나의 3자 머리는 그 심함이 극을 달리게 되었고,

나는 그때 머리에 받은 충격때문인지 그 돈으로 조립식을 산 기억이 구체적으로 나지 않는다.

나의 유년의 조립식은 그렇게 날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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